조각집 앨범이 처음 나왔을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당시에 작성했던 앨범 후기를 펼쳐보았습니다.
잔잔한 겨울 바다 같았던 이 앨범이 여전히 좋은 건 이상하지 않는 일이겠지요 :)
📍기다리던 앨범이 나왔습니다.
여기서 기다림이라는 것은 우리 가수님이 인스타그램에 뭔가 곧 새로운 무언가가 나올 것이라는 암시를 담은 게시글을 올린 후부터 그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죠. 사실은 기대하지 않았던, 더 엄밀히 말하지면 기대하지 못했던 앨범이라고 해도 맞겠네요. 분명 앨범이 나올 때가 아닌데, 심지어 얼마 전에 노래가 나왔었고(strawberry moon, 21.10.19) 그걸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남은 한 해를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새로운 앨범이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을 할 수 없었습니다. (*˙˘˙)♡
그런데 지나가던 행인이 뒷구르기 하면서 보더라도 이건 이 날짜(12.29)에 앨범이 나올 것 같다는 암시를 내포하는 게시글을 올려주시니, 이 순간부터 손꼽아 연말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시간도 늦은 여섯시잖아요. 이 시간대라면 무조건 새로운 음악임에 틀림없겠다고 확신할 수 있었죠. ( •̀∀•́ )✧
그리고 또 한가지 추측을 해보자니 '조각집' 이고 앨범자켓에는 지금가지의 기록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동안 발표하지 못했던 미공개곡들일까 싶은 생각이 스쳤습니다. 콘서트에 다니다보면 종종 들을 수 있었던 엄청무지막지하게 좋은 곡들인데 그 때가 아니고서는 들을 수 없는 곡들이기도 했었죠.
미공개 곡들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드라마' 였는데, 이게 마침 나온다고 하니 정말 설레었습니다. 아, 사실 '드라마'가 나온다는 것은 공식 굿즈를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새로 오르골을 판매했는데 그 중에서 '드라마' 오르골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건 무조건 나오는구나 싶었습니다.
그 외의 수록곡은 무엇이 포함되어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뭐 걱정은 없었습니다. 좋을 게 분명했으니까요. 그저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즐겁게 기다리다보니 노래가 나왔네요. 발매가 되자마자 일단 저는 들었습니다. 구간 반복 재생을 통해서 하루종일 듣고 있었죠. 자기 직전까지요. 정말 그렇게 종일 들어도 질리지 않는 것은 노래가 편안해서일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노래가 잔잔하고 편안하고 듣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어요.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죠. 가사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공감을 사게 만들고 선율과 찰떡같이 어울려서 때로는 감정을 깊게 건들기도 했고, 때로는 아무생각없이 선율에 몸을 맡기기도 했으며, 때로는 자장가가 되어 조용조용하게 잠을 재워주었습니다. 어느 순간에나 잘 어울린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그렇게 종일 음악을 듣다가, 오늘은 앨범 설명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왈칵. 뭔가 울컥하게 만드는 문장들이었어요. 담담하게 그 노래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언제 만들어졌으며, 어떤 생각을 하며 만들었음을 설명해주고 있는 글이었지만, 그래서 더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아요. 담담해서. 마치 오래된 친구에게 편지를 쓰듯이 설명해주고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설명을 읽다보니 앨범 속 음악들이 더 많이 이해가 되었어요.
앨범 설명글을 읽고 계속해서 노래를 들으면서 드는 생각은, '이 앨범은 팬들을 위한 선물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뭐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느껴졌어요. 발매된 곡들은 콘서트가 아니면 들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었던 곡들이었고, 유투브에서 나오는 좋지 않은 음질임에도 불구하고 황송하게 생각하며 들어왔던 노래들이었는데 그런 곡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니깐요. 그래서 이 앨범이 나오게 된 것은 팬들에게 있어서 특히나 선물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20대의 마지막을 가수님을 오랫동안 좋아해주는 팬들과 함께 한다는 의미도 있을 것 같고 '조각집'이라는 말처럼 큰 사건들 사이사이 존재했던 조각들을 모으고 엮어서 대단원을 마무리하는 의미도 있을 것 같아요.
앨범에 대한 감상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제가 감동을 받았던 우리 가수님의 앨범 설명글 아래에 가져와봤습니다. 편지글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오랜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기도 해요. 분명한 건 우리 가수님은 굉장한 문장가라는 사실이죠. 작곡가이자 자사가이자 문장가이자 프로듀서이자 훌륭한 배우이기도 한 다재다능한 우리 가수님을 좋아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 감사합니다. 누구에게든요:) 아래 앨범 설명글을 읽고 더 깊게 새로운 음악들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분명히!
구태여 바깥에 내놓지 않았던 내 이십대의
그 사이사이 조각들
1. 드라마
스무 살에 썼던 곡이다. 실연을 하고 며칠 동안 사랑에 대해 몹시 비관하던 내 친구를 잠시나마 웃게 해주고 싶어서 만들었다. 발매를 하진 않았지만 매년 콘서트 앵앵콜 시간에 빼놓지 않고 불렀던 만큼 이 곡에 대한 애정이 크다. 종종 비슷한 감성의 곡을 써보려고 시도해 봤지만 이미 나에게 지나간 챕터를 흉내만 내는 것 같아서 그만뒀다.
공연장에서 부를 때는 현장감을 받아 수월하고 경쾌하게 불렀던 것 같은데 레코딩은 역시 다른 영역이라는 걸 이 곡을 녹음하며 새삼 느꼈다. 이번 녹음 중 캐릭터를 찾느라 가장 고생한 곡이다. 공연장에서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따로 편곡을 하지 않았다.
'드라마'라는 곡의 존재를 잊지 않고 10년 동안이나 굳세게 정식 발매를 요청해 준 나의 팬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처음이라 잘 해내 보이고 싶어 피가 끓었던 '내 손을 잡아'와, 어느새 제법 미끈한 여유가 생겼던 '금요일에 만나요' 사이에 '드라마'가 있다. 내세우고픈 욕심은 없었으나 내 마음에는 꼭 들게 맞아서 꽤나 소중하게 간직했던 이 곡이, 어쩌면 이번 소품집의 이유이자 주제이기도 하겠다.
2. 정거장
스물다섯에 쓰기 시작해서 완성은 스물여섯에 했다. 원래 붙어서 태어난 음악인 듯, 가사와 멜로디가 동시에 떠오르는 곡들이 있는데 나에겐 오랜만에 이 곡이 그랬다. 그런 곡들은 어쩔 수 없이 편애를 받는다. 공들인 구성이나 특징적인 코드웍은 없지만 숨 쉬듯이 1절을 써놓고 나자마자 난 이 곡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근데 그래놓고 까먹었다. ㅎ 그러다가 1년 후 '나의 아저씨'에서 '지안'이라는 인물을 만났고, 자연스럽게 그 인물에 대입해 2절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다. 언제라는 확실한 계획은 없었지만 언젠가는 꼭 발매하고 싶은 곡이었다. 스토리텔러로서보다도 탑 라이너로서, 어느 곡보다 이 곡에 나라는 창작자의 가장 중심적인 감성이 담겼다고 생각한다.
이 곡만 유일하게 가이드 버전 보컬을 섞어 사용했다. 3년 전의 목소리와 지금의 목소리가 함께 담겨 있는 것이다. 그때는 담담했는데 지금의 나는 이 곡을 대할 때 좀 더 호소하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이제 와서는 이미 지나간 이야기여서 그런 걸까.
지은과 지안의 사이 '정거장'이 있다.
정거장 하나만큼의 거리가 둘을 이었다.
3. 겨울잠
한 생명이 세상을 떠나가는 일과, 그런 세상에 남겨지는 일에 대해 유독 여러 생각이 많았던 스물일곱에 스케치를 시작해서 몇 번의 커다란 헤어짐을 더 겪은 스물아홉이 돼서야 비로소 완성한 곡이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 혹은 반려동물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서 맞이하는 첫 1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으로 써 내려갈 플롯이 명확해서 글을 쓰기에는 어렵지 않은 트랙이었지만 그에 비해 완성하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너무 직접적인 표현을 쓰고 싶지도, 그렇다고 너무 피상적인 감정만을 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녹음 시간이 가장 길었던 곡이다.
평소 레코딩에서는 최대한 간결한 표현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 곡은 굳이 감정을 절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움을 극대화하고 싶은 마음에 곡의 후반부가 아닌 중간 인털루드에 전조를 감행하는 나름의 과감한(?) 편곡을 시도했다. 다른 곡들과는 달리 피아노 기반의 곡으로 담은 것도 그 이유에서다.
내 세상에 큰 상실이 찾아왔음에도 바깥엔 지체 없이 꽃도 피고, 별도 뜨고, 시도 태어난다. 그 반복되는 계절들 사이에 '겨울잠'이 있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이제는 정말로 무너지지 않는다. 거짓말이 아니란 걸 그들은 알아주겠지.
4. 너
스물네 살, 집에도 못 가고 산골에서 며칠간 드라마 촬영을 하다가 윗집 사는 친구가 너무나 보고 싶어서 끄적였던 곡이다. 당시 촬영 중이던 사극 드라마에 십분 몰입해 멀리 있는 님에게 보내는, 닿을지 어떨지 모르는 연서를 보낸다는 설정으로 한 줄 한 줄 애틋하게 가사를 썼던 기억이 난다.
이 곡을 수록할까 말까 오래 고민했다.
수년 전, 팬들에게 이 노래를 발매할 생각이 없다고 언질을 해놓았기 때문에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닫힌 일이었다. 그러다 최근 어느 날, 유튜브를 배회하다가 오랜만에 이 곡을 다시 듣게 됐는데 그 게시물의 댓글을 보고 이 곡을 기다리는 팬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게다가 진심 하나로 썼던 곡이라 그런지 그 안에 담긴 가사들이 여전히 내 마음에 와닿았다.
수록에 대해 확신이 없는 상태로 5년여 만에 이 곡을 녹음실에서 다시 불러보는데, 신기하게도 첫 소절부터 탁 붙었다.
가수 생활 14년 동안 유일하게 음악 활동을 쉬었던 해에 유일하게 팬들에게 들려줬던 곡이다. '챗셔'와 '팔레트' 사이 느릿느릿 조용하게 흘러가고픈 '너'가 있다.
아마 내가 작업한 곡들 중 가장 음절이 적은 곡일 것이다.
5. 러브레터
스물여섯에 스케치하고 스물여덟에 완성해 '무려' 다른 아티스트에게 주었다. 작곡을 시작한 이래 타 아티스트가 내 곡을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작년 KBS 스케치북에 출연해 이 노래를 부른 것이 인연이 되어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아티스트, 정승환씨와 함께 작업하게 됐다. 작업 당시 안테나와 승환씨에게 간략히 이 소품집에 대해 미리 설명하고 음원 발매에 관한 동의를 얻었다.
노부부 중 먼저 세상을 떠나는 쪽이 남게 되는 다른 한쪽에게 남기는 마지막 연애편지라는 설정으로 가사를 썼다.
정승환씨의 버전이 담담하고 세련됐다면 내 버전의 러브레터는 좀 더 정공법으로 풀고 싶었다. 편곡은 동화 같고 아기자기하지만 가창 자체는 단단히 하려 했고 비교적 수월하게 녹음했던 곡이다. 또 가사 중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다오' 들을 파트마다 조금씩 다르게 연기해 보려고 노력했다.
마지막 문단에 '어디보다 그대 안에 나 머물러 있다오'라는 가사는 내 정규 5집 앨범 <LILAC>의 마지막 트랙 '에필로그'의 씨앗이 되어준 문장이다.
오랫동안 날 알아 왔고, 알고, 더 알려고 해준 나의 고마운 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소설과 편지 사이,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을 눌러 쓴 '러브레터'로, 이 소품집을 닫는다.
앨범이 나오기 하루 전, 기습적으로 선공개해준 라이브 클립입니다.
원래 알고 있던 음악이었는데, 이렇게 듣게 되어서 새로웠어요. 깨끗한 음질 소중하답니다.
기타 하나와 우리 가수님의 목소리 하나로 시작하는 노래의 처음은 시작하는 순간 귀를 기울이게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음악이 계속되면서 조명의 움직임과 밴드의 소리가 더해지며 만들어지는 모습은 어느 오케스트라 못지 않은 웅장함을 선물해주죠. 선공개 라이브 클립은 앨범의 대략적인 방향성을 알려주었습니다. '이런 곡들이 나올 예정입니다.'라고 소개해주는 것 같았어요.
음원은 전부 나왔지만, 영상미가 좋아서요. 슬쩍 링크를 넣어둬 봐요. (,, ・∀・)ノ゛
이렇게 우리 가수님의 앨범에 대한 감상평을 마쳐보겠습니다. ₍ᐢ.ˬ.ᐢ₎❤️
+ 물론 지금까지 나온 모든 곡들이 훌륭하고 모든 앨범에 감동을 받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나온 앨범은 '조각집'이기에 이렇게 열심히 감상평을 써 보았네요:) 다른 무엇보다 '사담(私談)' 같아서 좋았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알게된 '미공개곡'이 되었지만, 기본적으로 나누었던 추억이 음악에 깃들어 있기 때문인가 봐요. '이건 우리가 원래 알던 곡들이야.'라는 묘한 우월감이랄까요. 그래서 좋았다는 이야기 다시 한번 덧붙여봅니다.
+ 아이유님을 지칭하는 말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평소에는 '울언니'라는 표현을 쓰는데, 글을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고, '징짱'은 너무 가벼워보이고, '아이유님'은 너무 정중해서 거리감이 느껴져서 선택한 호칭이 '우리 가수님'이네요. 어쩜 이 단어가 더 거리감 느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그래도 좋습니다. '우리'의 가수님이잖아요. 대중픽이랄까. '아이유님'보다는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으니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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